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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와 마음 : 마음은 나디(경맥)를 따라 흐릅니다.

요가 생리학

since 2003

 

요가는 감정 상태를 자연스럽게 조절합니다.

 

therapistfinder.net의 "정신건강저널" 리포트에 의하면 듀크대학의 연구자들은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4개월간 조사했는데 주3회 30분간 운동한 참가자들은 약물복용 없이 우울증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이것은 약물만으로 치료한 경우와 동일한 비율입니다. 다른 연구에서는 8분간의 짧은 운동으로 슬픔과 긴장 그리고 화(火)를 경감시켰다고 합니다. 이것은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 단순히 육체적인 활동에 국한되지않고 마음의 영역에도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는 것을 입증한 셈입니다. 

요가는 이미 고대부터 몸과 마음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있었으며, 모든 행법들이 마음의 영역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아사나와 호흡운동은 일반적으로 수련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몸과 정신에 연결되도록 나디(경맥)를 정교하게 조절하기 때문에 근심과 스트레스를 줄이고 자신감을 기르게 됩니다.

요가의 호흡수련은 혈액의 산소량을 증가시키며 폐를 깨끗이 청소해 줄뿐만 아니라, 나디(경맥)의 흐름을 안정시키기 때문에, 육체를 이완시키고 마음을 안정시키고 집중상태로 만들며 불안과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고 좌우뇌의 균형을 맞춰주며 청명한 사고를 가능케 합니다. 호흡수련을 할 때에 요수행자는 강렬한 집중과 정확한 나디의 흐름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는 마음을 정신적 방해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신경쇠약과 안절부절, 혼란, 우울증과, 정신적 피로 등을 감소시킵니다.

 

나는 신체인가 마음인가?

   사람들은 ‘나(자신)’를 지칭할 때 해부학적 개념의 육체를 의미한다고 대부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가 수련을 통해서 우리 육체를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인 에너지 시스템이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꾸며낸 가상의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으로 미세신(微細身, liṅgaśarīra, Sūkśma Śarīra)이라고 합니다. 미세신은 일상적인 의식으로 파악되지는 않지만, 개인 존재의 실제 모습입니다.  

   따라서 이 미세신이 요가수행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지만 수련과정에서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는 중요한 심신상응체(心身相應體)입니다. 마음과 몸은 실제로 같은 구조 안에 있고,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이 구조를 우리는 ‘사이코소마(Psychosoma)’라 부를 수 있습니다.


요가는 사이코소마틱스(Psychoso-matics) 즉 정신신체의학(精神身體醫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은 쁘라나(氣)라는 에너지 매개체를 통해서 상호 작용합니다. 하타요가는 이 둘 사이의 긴밀한 관계에 대한 통찰로부터 시작됩니다.

 

나디를 보는 것(관觀)으로부터 마음을 보는 것으로

 

요가수련은 기를 다스리는 것에서 마음 수련으로 이어지는 심신수련입니다.

마음이 사라지는 곳에서 기가 사라지고 기가 사라지는 곳에서 마음이 사라집니다. 기를 느끼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과 기는 하나입니다. 기의 움직임이 마음 작용과 별개가 아니므로 나디를 관(觀)하는 방법이 마음을 관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상캬까리까』1.19에 영아(靈我, puruṣa)는 독존이고 중립이며 보는 작용(관조)이며 非作者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보는 작용(draṣṭṛtvam)은 『요가수뜨라』 1.3의 보는 자(draṣṭuh, 순수한 관조자)와 동일한 어근을 갖습니다.

“요가는 심작용의 지멸이다.”(요가수뜨라 1.2)

그때 보는 자(순수정신)는 본성에 안주한다.”(요가수뜨라 1.3)

그 밖의 경우에 [보는 자(순수정신)는 마음의] 작용과 동일한 양상을 갗는다.”(요가수뜨라 1.4)

보는 자혹은 관찰하는 자로서 순수의식은 요가심리학에서 핵심적인 개념입니다. 요가심리학에서는 집중, 명상, 삼매를 통해 심리적 현상을 지멸시킴으로써 순수의식으로서의 관찰하는 자를 드러나게 하여, 실존적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순수의식으로서의 관찰하는 자는 심작용이 지멸된 요가의 경지에서 가능합니다. 요가심리학에서는 순수정신, 순수자아, 보는 자(sākṣin), 푸루샤(puruṣa)라고도 불리는 참자아(ātman)는  일반적인 심리학적 관찰기능과는 다른 차원의 것으로 봅니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입문과정에서 부터 관법에 익숙해져야 한다.

먼저 일상적인 의미에서 스스로를 관찰하는 수련을 통해서 자기자신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야 합니다.

심리학적 측면에서 관찰자에 대한 연구들은 심리치료에 적용시킬 수 있는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게 됩니다. 스스로를 비추어 볼 수 있다는 의식의 특성이 과연 어떻게 가능하며, 그것이 의식 전반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이 서양심리학에서도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윌리암 제임스는 인간의식을 심도있게 성찰하는 가운데 정신의 내용인 사고의 흐름을 아는 자인 관찰하는 자기를 최초로 발견하였다. 로베르또 아싸지올리는 관찰하는 자기를 심리치료에 적극 도입하여 환자들을 심리적 장애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왔으며, 근래에 켄 윌버는 관찰하는 자기를 성장과 발달의 관점에서 파악하였습니다.

불교적 수행의 마음챙김(sati)"이 심리치료에 차용되어 관찰하는 기능이 심리적 자기 성찰의 주요소로 수용되고 있습니다.

하타요가는 나디에 집중하면서 바라봄을 지속하여 나갑니다. 물질적인 속성이 강한 근육이나 관절 등에 집중하는 방식으로는 마음의 속성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프라나가 몸 전체를 흐르는 ‘정신의 통로’이자, ‘생명에너지’의 통로이기때문에, 나디에 대한 관법을 지속하였을 때 자연히 호흡수련과 명상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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